2007년 01월 21일
전인적 치유 수양회 간증문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지 아니한 모든 죄를 기억하시는 분입니다. 그 죄가 설령 철없던 어린 시절 지은 것일지라도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소심한 분으로 여겨서는 곤란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지라, 자신이 사랑하는 귀한 자녀를 사망에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잊었던 죄들을 이따금 툭 던져주시며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전인적 치유 수양회’를 통해 ‘내 죄를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이 단지 ‘용서의 하나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난 2년여의 시간동안, 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올가미에 갇혀 불안함에 떨어왔습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고통은 억울한 마음과 분한 마음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자라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저를 오랜 시간동안 묵묵히 바라보시더니 이번 ‘전인적 치유 수양회’에서 마침내 치유의 역사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치유의 방법은 위로가 아닌 책망이었습니다. 수양회의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은 끊임없이 저를 책망하셨습니다. ‘네 죄가 너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던 그 올가미는 제 자신이 범한 죄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참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누군가와의 껄끄러운 관계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돈이나 명예, 권력을 잃는 것보다도 사람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지요. 저의 죄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자신의 오랜 가치관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교만에 빠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겪게 만드셨습니다. 그 시간동안 결국 저의 가치관이 저를 더 힘들게 했던 것입니다. ‘잘못된 것은 나였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 거기서 끝났다면 하나님과 저의 관계는 고작해야 선생과 제자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고, ‘전인적 치유 수양회’ 역시 지금처럼 은혜롭게 기억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강가로’라는 시간을 통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저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하나님’이라는 찬양 바로 뒤에 흘러나온 ‘사랑한다. 내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안다.’는 내용의 찬양을 듣는 순간, 한(限)처럼 맺혀있던 마지막 응어리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책망이라는 매질로 죄를 깨닫게 하시고는, 의기소침해있는 저를 와락 껴안으며 따뜻하게 위로하셨습니다. ‘많이 아팠지? 사랑한다. 내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안단다.’ 마치 학교에서 싸운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참아왔던 울음을 엄마 품에서 터트린 어린 아이처럼, 이내 하나님 앞에서 그저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아버지...’
그때부터 눈물로 얼룩진 회개와 감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낱낱이 올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미처 회개하지 못한 죄들에 대한 용서를 구하며 일상적으로 하는 고백에 진심을 담아 내뱉었습니다. ‘내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겠습니다.’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방언의 은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빠른 속도의 방언 탓에 숨이 가빠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제게는 기쁨의 눈물이 넘쳐흘렀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입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기뻤습니다. 여태까지 받아온 어떤 것보다도 행복한 선물이었고 감사한 체험이었습니다.
죄라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짓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란 그리 완전하지 못한 존재인지라 숱한 후회의 시간 뒤에도 또다시 죄의 늪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곤 합니다. 중요한 것은 죄를 지었을 때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서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진심이 담긴 회개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용서로 이어지고, 하나님의 용서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주심으로서 우리는 그 죄로부터 진정으로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리더라는 자리에 앉아본적이 없습니다. 항상 2인자의 자리에서 참모와 같은 역할을 해왔고 그것이 적성에도 맞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청년회 대표 자리를 권유 받았을 때에는 감당할 자신이 없어 걱정이 앞섰습니다. 뿐만 아니라 군대에 있는 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과 계획했던 일들을 모두 포기해야한다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매주 설교말씀을 통해 저의 꿈과 계획들을 내려놓게 하셨고 청년회를 위해 봉사할 준비를 시키셨습니다.
특히 이번 수양회를 통해 ‘나’라는 존재의 현주소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진정으로 포기해야 할 것은 저의 꿈이나 계획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으로부터 모든 죄와 고통이 시작된다는 깨달음을 통해 한동안 잊고 지내왔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전인적 치유 수양회’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기신 일들을 위해 직접 준비하신 연단의 마지막 과정이었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청년회 대표라는 부담감 때문에 깨끗한 모습이 되려고 발버둥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죄라는 것에 대해 그렇게 깊이 고민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을 피해 무화과 잎에 몸을 숨기지 않을 것입니다. 맡겨진 사명을 통해 더 강한 하나님의 군사로 성장해나갈 자신의 모습을 기대하며 기쁨으로 하나님의 일에 봉사할 것입니다. 한 가지만 욕심을 부리자면 2007년의 끝자락에서 예수님이 ‘내가 너의 죄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견뎌내길 잘했구나.’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지난 2년여의 시간동안, 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올가미에 갇혀 불안함에 떨어왔습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고통은 억울한 마음과 분한 마음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자라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저를 오랜 시간동안 묵묵히 바라보시더니 이번 ‘전인적 치유 수양회’에서 마침내 치유의 역사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치유의 방법은 위로가 아닌 책망이었습니다. 수양회의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은 끊임없이 저를 책망하셨습니다. ‘네 죄가 너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던 그 올가미는 제 자신이 범한 죄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참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누군가와의 껄끄러운 관계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돈이나 명예, 권력을 잃는 것보다도 사람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지요. 저의 죄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자신의 오랜 가치관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교만에 빠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겪게 만드셨습니다. 그 시간동안 결국 저의 가치관이 저를 더 힘들게 했던 것입니다. ‘잘못된 것은 나였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 거기서 끝났다면 하나님과 저의 관계는 고작해야 선생과 제자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고, ‘전인적 치유 수양회’ 역시 지금처럼 은혜롭게 기억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강가로’라는 시간을 통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저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하나님’이라는 찬양 바로 뒤에 흘러나온 ‘사랑한다. 내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안다.’는 내용의 찬양을 듣는 순간, 한(限)처럼 맺혀있던 마지막 응어리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책망이라는 매질로 죄를 깨닫게 하시고는, 의기소침해있는 저를 와락 껴안으며 따뜻하게 위로하셨습니다. ‘많이 아팠지? 사랑한다. 내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안단다.’ 마치 학교에서 싸운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참아왔던 울음을 엄마 품에서 터트린 어린 아이처럼, 이내 하나님 앞에서 그저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아버지...’
그때부터 눈물로 얼룩진 회개와 감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낱낱이 올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미처 회개하지 못한 죄들에 대한 용서를 구하며 일상적으로 하는 고백에 진심을 담아 내뱉었습니다. ‘내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겠습니다.’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방언의 은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빠른 속도의 방언 탓에 숨이 가빠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제게는 기쁨의 눈물이 넘쳐흘렀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입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기뻤습니다. 여태까지 받아온 어떤 것보다도 행복한 선물이었고 감사한 체험이었습니다.
죄라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짓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란 그리 완전하지 못한 존재인지라 숱한 후회의 시간 뒤에도 또다시 죄의 늪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곤 합니다. 중요한 것은 죄를 지었을 때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서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진심이 담긴 회개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용서로 이어지고, 하나님의 용서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주심으로서 우리는 그 죄로부터 진정으로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리더라는 자리에 앉아본적이 없습니다. 항상 2인자의 자리에서 참모와 같은 역할을 해왔고 그것이 적성에도 맞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청년회 대표 자리를 권유 받았을 때에는 감당할 자신이 없어 걱정이 앞섰습니다. 뿐만 아니라 군대에 있는 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과 계획했던 일들을 모두 포기해야한다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매주 설교말씀을 통해 저의 꿈과 계획들을 내려놓게 하셨고 청년회를 위해 봉사할 준비를 시키셨습니다.
특히 이번 수양회를 통해 ‘나’라는 존재의 현주소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진정으로 포기해야 할 것은 저의 꿈이나 계획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으로부터 모든 죄와 고통이 시작된다는 깨달음을 통해 한동안 잊고 지내왔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전인적 치유 수양회’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기신 일들을 위해 직접 준비하신 연단의 마지막 과정이었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청년회 대표라는 부담감 때문에 깨끗한 모습이 되려고 발버둥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죄라는 것에 대해 그렇게 깊이 고민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을 피해 무화과 잎에 몸을 숨기지 않을 것입니다. 맡겨진 사명을 통해 더 강한 하나님의 군사로 성장해나갈 자신의 모습을 기대하며 기쁨으로 하나님의 일에 봉사할 것입니다. 한 가지만 욕심을 부리자면 2007년의 끝자락에서 예수님이 ‘내가 너의 죄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견뎌내길 잘했구나.’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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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7/01/21 21:25 | R.E.V.E.R.I.E.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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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상한 감정의 치유"를 읽고
상한 감정의 치유는 청년시절에 읽었었던 “좌절된 꿈의 치유”, 올해초에 읽었었던 “탓”에 이어 3번째 읽는 씨맨즈의 책입니다. 유명한 만큼, “상한 감정의 치유”는 이미 읽었어야 했던 책이었는데 좌절된 꿈의 치유를 읽은 후 비슷한 내용일 것 같아서 여지껏 읽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이 책을 읽으면서......more